"유빙에 막혀 해 뜰 때까지 기다렸다"…북극항로 50일의 생생한 기록
극지 바다를 뚫은 박지정 1등 항해사 기록
유빙·혹한·시차 겪으며 극지 운항 경험 쌓아
새벽 2시, 보이지 않던 얼음길이 열렸다
5대양 6대주 넘어 북극까지…난 가봤다
"한 번 넓어진 경험, 다시 줄어들지 않아"
2026-10-22 17:00:00 ㅣ 2026-10-22 17:06:18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지난 8월31일 밤에서 9월1일로 넘어가는 시점, 북극해 축치해의 브랑겔랴 섬 남부 해역에서 팬스타 아크로호 앞에 유빙이 길을 막아섰습니다. 밤이 되면서 얼음 크기와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워지자 선박은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해가 뜨자 바닷길이 열렸고 선박은 속도를 낮춰 유빙 사이를 빠져나갔습니다.
 
22일 만난 박지정 팬스타트리 부장(1등 항해사·운항감독)에게 이 순간은 북극항로 시범운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입니다. 1등 항해사이자 운항감독으로 승선한 그는 부산을 출발해 북극해, 유럽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기까지 50일간의 항해 소회를 밝혔습니다.
 
 
22일 박지정 팬스타트리 부장(1등 항해사·운항감독)이 부산 소재 해양수산부에서 북극항로 51일의 생생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해양수산부)
 
유빙 피하려 ‘우회’…“플랜B·C 고민”
 
박지정 부장은 유빙에 가로막혔을 때 항해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운항감독으로서는 항로를 바꾸는 등 대안을 검토해야 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플랜 B, 플랜 C까지 다시 돌아가야 되는 건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 그런 고민들을 좀 많이 했던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유빙을 피해 항로를 변경해야 했습니다. 비키츠키 해협에서는 규모가 큰 유빙을 만나 북위 80도까지 우회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유빙 밀집도가 낮은 구간을 이용해 통과했습니다.
 
앞서 항해한 선박들의 움직임도 참고했습니다. 박 부장은 자동식별장치(AIS) 정보를 통해 다른 선박들이 우회한 경로를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선장과 육상 측에 공유했습니다.
 
박 부장은 “그 배들이 우회하는 항로를 추적해 가보니 실제로 우회를 왜 해야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0월13일 부산 북항 제5부두에서 북극항로 시범 운항선 '팬스타 아크로호'를 시찰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영하 4도 바닷물…통신망 다중으로 준비
 
유빙뿐 아니라 추위도 난관이었습니다. 박지정 부장은 연료와 윤활유, 기계 순환 계통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고 전했습니다. 저온에서 윤활유가 굳으면 순환 계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기관부가 별도 보온과 히터 장치 등을 활용해 대응했습니다.
 
박 부장은 극지 환경을 체감한 경험을 설명하며 “영하 4도라는 해수 온도도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배에서는 굉장히 극한의 환경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고위도에서는 나침반 편차가 커지고 위성항법시스템(GPS) 위치 정보가 일시적으로 끊기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통신 역시 일시적인 단절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박 부장은 “시험 운항을 준비하면서 100%가 아니라 200%, 300%의 (복수 위성망) 준비를 했었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마새트(국제해사위성기구) 위성뿐 아니라 저궤도 위성과 스타링크까지 비상 연락 수단을 마련한 겁니다.
 
이 같은 경험은 북극항로 운항에서 장비를 갖추는 것뿐 아니라 이상 상황에 대응할 대체 수단과 점검 체계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박지정 팬스타트리 부장(1등 항해사·운항감독)과 오행록 해양수산부 북극항로 추진본부 부본부장, 이성 팬스타라인닷컴 이사, 권영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손무성 한국선급 책임검사원이 22일 부산 소재 해양수산부에서 북극항로 시범운항과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기상 악화와 시차…선원 생체리듬도 흔들려
 
귀항 과정에서는 유빙보다 기상이 어려운 변수였습니다. 박 부장에 따르면 컨테이너선이 10도 이상 횡요하는 상황이 상당 시간이 이어졌고, 눈바람도 겪었습니다. 북극해를 벗어난 뒤에는 태풍을 피해 쿠릴 열도 안쪽으로 우회한 다음 동해로 향했습니다.
 
시차 변화도 선원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경도를 이동하면서 수면과 생체리듬이 흐트러졌기 때문입니다. 박 부장은 귀항 과정에서 선원들이 잠을 제대로 이루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항로와 비교해 북극항로가 선원 입장에서 더 나을 가능성도 있다고 에둘렀지만 항로별 위험과 근무 여건 등을 함께 고려해야할 대목으로 읽힙니다.
 
 
국내 첫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섰던 '팬스타 아크로호'(2758TEU)가 2026년 10월11일 부산항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아야”
 
박지정 부장은 북극항로 시범운항이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극지 환경을 경험한 선원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고, 지속적인 운항을 통해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박 부장은 “이게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아야 된다”며 “한 번 갔다 와 보니 한 번 넓어진 경험은 다시 줄어들지는 않더라. 해기 능력이라는 게”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운항을 통해 다양한 항로를 검토할 수 있게 됐고 극지 환경에서 장비와 기계가 보이는 반응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향후 운항에서는 장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추위, 악천후를 고려해 갑판 작업과 화물 고정 업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이번 시범운항에서 기존 항로보다 운항거리 약 35%, 운항기간 약 10일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운항 데이터를 분석해 업계와 공유하고 선박, 항로는 다양화하는 등 내빙선박 도입 지원 및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다만 이번 시범운항만으로 정기 운항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모두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유빙과 기상에 따른 우회, 장비 관리, 선원 운용 등 실제 항해에서 확인한 변수들을 분석하고 반복 운항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박 부장은 이번 경험이 선원들의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선원들이 흔히 ‘5대양 6대주’를 모두 다녀왔다고 표현하는 데 대해, 이번에는 북극까지 경험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뿌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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