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준혁 기자] 런던에서 고추장을 활용한 소스가 곁들여진 메인 메뉴를 만나는 것, 멜버른에서 김치를 활용한 브런치 메뉴를 만나는 것은 이제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식재료가 세계 각지의 식탁에 자리 잡는 것을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일상 속에 가장 친숙하게 자리 잡은 외국 음식은 무엇일까?’ 중식과 일식, 패스트푸드로 대표되는 미국식 등 여러 음식이 떠오르지만 역시 피자와 파스타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음식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약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미슐랭 1스타를 유지했고, 한국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 파브리 셰프를 만나 한식과 한국 외식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음식 플레이팅을 마무리 중인 파브리 셰프. (사진=뉴스토마토)
정통을 지키는것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의 차이
자국의 음식을 해외에 소개하는 셰프들은 정통과 현지화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붓곤 합니다. 기존의 맛과 조리법만을 고집한다면 현지 고객들의 입맛에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고, 지나친 현지화는 오히려 고유의 맛과 조리법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브리 셰프는 이와 관련하여 “재료 본연의 맛과 핵심 조리법, 음식이 탄생한 배경은 지켜져야 하지만 메뉴와 맛의 구성과 균형은 새로운 고객들의 문화와 입맛에 맞게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파브리 셰프는 그 예로 “로마식 정통 까르보나라에는 페코리노 로마노를 사용하지만 한국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조금 더 부드러운 풍미를 가진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의 경우 양젖을 사용하여 진한 풍미와 높은 염도가 특징입니다. 반면 소젖을 사용한 그라나 파다노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존의 맛을 유지하며 한국 고객들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맛으로 새로운 균형을 찾은 것입니다. 파브리 셰프는 “염도와 감미, 산미를 조절하는 것은 번역을 하는 것과 같다. 좋은 번역은 언어가 달라도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철학에 대해 밝혔습니다.
대구, 엔초비, 올리브 등과 푸실리니 파스타를 활용한 나폴리 스타일의 토마토 파스타. (사진=뉴스토마토)
한식 세계화의 다음 전략은 음식이 아닌 문화를 소개하는 것
파브리 셰프가 한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강렬한 매운맛과 발효 음식 특유의 향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를 접하며 점차 담백하고 섬세한 맛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파브리 셰프는 “평양냉면의 담백한 맛, 계절마다 달라지는 제철 나물의 쌉사름한 맛, 지역마다 다른 전통 장의 깊은 맛 등을 보며 예전과 달라진 것은 한식이 아니라 한식을 이해하는 제 입맛과 시선의 깊이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식의 세계화 전략을 이야기할 때 음식의 맛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를 함께 알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계절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식재료별 특징, 발효와 저장 기술에 담긴 지혜, 다 같이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 등 모두 한식을 설명하는 좋은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파브리 셰프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한상 문화를 언급했습니다. “여러 반찬을 차려놓고 먹는 한상 문화는 같은 반찬이 놓여 있어도 먹는 사람에 따라 자신만의 조합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단순히 식사 방식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다양한 맛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경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자 크림과 시칠리아식 사과 카포나타를 곁들인 돼지 안심. (사진=뉴스토마토)
시간을 하나의 재료로 사용하는 기술, 발효.
발효란 미생물의 작용을 통해 식재료의 성질과 풍미를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시간과 온도, 환경에 따라 같은 식재료라 하더라도 그 맛과 향이 확연하게 달라지곤 합니다. 파브리 셰프는 발효를 한식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꼽았습니다. “한식의 발효는 단순히 저장 기간을 늘리기 위함이 아닌 재료의 새로운 맛과 깊이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하나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파브리 셰프는 “수많은 레스토랑과 셰프들이 발효 기술과 식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지금이 바로 한국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고유의 것을 꺼내 선보일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해외 많은 레스토랑에서 한국의 전통 장을 활용해 요리에 새로운 풍미를 더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꼭 한식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발효 기술과 식품이 다양한 요리로 확장되고 융화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파브리 셰프는 “소박한 국밥 한 그릇부터 한식 파인 다이닝까지 모두 한식의 발효를 공유하고 있다. 이는 한식 역시 일상의 음식부터 프리미엄 시장까지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는 파브리 셰프. (사진=뉴스토마토)
내가 낮춘 것은 음식의 수준이 아닌 레스토랑의 문턱
파브리 셰프가 한국에서 느낀 외식산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유행의 주기가 짧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였습니다. 지역에 뿌리 내린 로컬 레스토랑들이 외식산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에서는 새로운 메뉴와 컨셉을 시도하는 주기가 짧고 보다 적극적이라는 설명입니다. 파브리 셰프 역시 이에 맞춰 기존에 이탈리아에서 선보이던 요리와는 다른 스타일의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약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미슐랭 1스타를 유지한 파브리 셰프는 현재 기존의 요리 철학과 기준은 유지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파브리 셰프는 “특별한 날 먹는 비싼 음식보다 친구 집에서 즐기는 부담 없는 요리들을 만들고 싶다. 그동안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다양한 지역의 특색 있는 요리들을 선보일 계획”이라 밝히며 “제가 낮추려고 노력한 것은 음식의 수준이 아니라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문턱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탈리아 요리를 한국에 소개하는 파브리 셰프의 이야기는 반대로 한식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과 방향에 큰 힌트를 주었습니다. 본질을 지키되 현지의 입맛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메뉴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문화를 전달하는 것은 앞으로 한식의 세계화에 우리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주요 포인트일 것입니다.
홍준혁 기자 jhh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