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지 2일로 한 달을 맞았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청이 문을 닫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경찰이 각각 맡을 사건이 정해졌지만, 실제 현장은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혼란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수사권이 없는 공소청은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늘리고 있고, 경찰은 그만큼 일감이 늘어난 데다, 중수청은 여전히 조직 정비에 여념이 없는 까닭입니다. 특히 공소청이 중수청에 넘기는 사건이 별다른 제한 없이 다시 경찰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인 탓에 사건이 기관 사이를 떠돌며 수사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모습입니다.
검찰을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내용의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지 한 달째인 2일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공소청은 기소와 공소 유지를, 중수청은 부패·경제 등 중대범죄 수사를 맡게 됐습니다. 나머지 사건은 경찰 몫입니다. 수사권을 잃은 공소청은 그동안 직접 수사하던 사건을 중수청이나 경찰로 넘겨야 합니다. 다만, 공소시효가 임박한 경우처럼 불가피한 사건은 12월30일까지 직접 수사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경찰은 수사 도중 중수청 소관 범죄를 알게 되면 중수청에 통보해야 하고, 중수청은 직접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이첩을 요청해 사건을 가져갑니다. 이날 경찰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검찰로부터 수배 사건 1954건을 이관받아 영장 발부 및 지명수배 등 필요한 후속 조치를 완료했고, 중수청으로 2002건의 인지 사실을 통보하는 등 사건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중수청과 개별 사건의 이첩과 수사 협력 방안도 협의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혼란은 여전한 상태입니다. 실제로 경찰이 통보한 중대범죄 등 사건 2002건 가운데 중수청이 이첩을 요청한 것은 1건에 그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중수청이 한 달간 송치한 건 수는 3건, 피의자를 구속한 건수는 5건에 불과합니다. 지난달 임명된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이 취임 일성으로 조기 안착을 강조하며 인력·시설·시스템 정비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지만, 아직 안정화 단계에 다다르지 못한 셈입니다.
경찰 역시도 일감이 크게 늘어 분주해졌습니다.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경찰에 사건을 돌려보내 보강을 요구하는 일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2일부터 29일까지 공소청의 보완수사 요구는 1만2465건으로 하루 평균 445건에 달했습니다.
경찰로 쏠리는 '일감'…브레이크 없는 '재이첩'
더 큰 문제는 사건이 공소청에서 중수청으로, 또 경찰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로 기관 사이를 떠돌며 표류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공소청은 검찰 시절 직접 인지한 사건 가운데, 중수청 소관이면서 기한 안에 마무리하기 어려운 200여건을 1차로 추려 순차적으로 중수청에 넘기고 있습니다. 중수청은 공소청의 이관을 거부할 수 없지만, 일단 넘겨받은 뒤 직접 수사할지를 판단하고 그렇지 않은 사건은 경찰로 다시 보낼 수 있습니다. 검찰이 쥐고 있던 대형 경제·부패 사건이 중수청을 거쳐 세 번째 기관인 경찰로 옮겨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법 구조 역시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중수청이 경찰 사건을 가져올 때는 사건의 중대성, 수사 진행 정도, 공정성 논란, 공소시효 임박 여부 등을 따져야 하고, 경찰은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수청이 사건을 다른 기관으로 보낼 때는 중수청법 제43조에 '피의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춰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라는 포괄적인 요건만 담겼습니다. 즉, 무엇이 '적절한' 경우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인력 부족이나 업무 과중 같은 사정으로도 얼마든지 넘길 수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서울중수청은 지난달 21일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고발된 추미애 경기지사 사건을 반부패수사국에 배당했다가 이틀 만에 경찰로 넘겼습니다. 주된 혐의가 중수청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정원의 66.1%인 1900명으로 출범한 중수청은 출범 초기 서울청 과장 자리 25개 가운데 11개가 비어 있을 만큼 아직 진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넘겨받은 사건 상당수를 경찰로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우려는 중수청 설계 단계부터 제기됐습니다. 경찰청은 중수청법 입법예고 기간이던 1월 행정안전부에 낸 의견서에서 중수청에 이첩 요청권과 임의 이첩권을 함께 주는 구조를 문제 삼았습니다. 유재성 당시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2월 기자간담회에서 "경찰과 중수청 사이에 사건이 오가며 이른바 '사건 핑퐁'이 발생하고 수사 지연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금융권 인공지능(AI) 해킹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지난 9월 말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한 달여 만에 해당 사건을 중대범죄로 보고 중수청에 통보했으나, 중수청은 경찰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점 등을 들어 직접 수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곧 정치권 등에서 '사건 핑퐁'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사건 떠넘기기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 공소청 검사는 "재이첩으로 수사가 지연되고 책임이 분산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 했습니다. 사건이 기관 사이를 오가는 동안 증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거나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올 수 있다는 겁니다.
10월2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검찰청이 78년 만에 문을 닫고 공소청이 출범한 지 한 달이 된 2일 서울 서초구 공소청 본청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첩과 재이첩에 제한이 없는 문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수처 출범 초기, 서울중앙지검은 2021년 3월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유출 의혹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9개월 뒤 사건을 검찰로 돌려보냈습니다. 출범 첫해였던 공수처는 검찰에서 수사관 10여명을 파견받아야 할 만큼 수사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더 큰 고비는 올해 말입니다. 12월30일 공소청의 직접수사 기한이 끝나면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이 한꺼번에 중수청과 경찰로 넘어갈 전망입니다. 하지만 기관 간 관할 다툼을 조정할 수사권관할조정협의회는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라 2027년 2월에야 가동됩니다. 사건이 가장 많이 오갈 시기에 재이첩을 둘러싼 갈등을 풀 창구가 비어 있는 셈입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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