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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재벌의 이율배반적 경영
2017-05-30 16:42:52 2017-05-30 17:10:51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무한경쟁의 시대다. 기업 전략의 핵심은 차별화로 맞춰졌다. 차별화 전략은 고품질, 서비스, 디자인, 기술력, 브랜드 이미지 등 무엇으로든 가능하다. 기업들은 각각의 요소에서 시장 내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포지셔닝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소비자가 인식하는 자사 브랜드, 제품, 서비스의 포지션을 경쟁사보다 우월하게 만드는 게 포지셔닝이다. 핵심은 최고의 상품, 서비스 판매가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있다. 마케팅에서 포지셔닝 개념을 최초로 대중화시킨 마케팅전략 전문가 잭 트라우트는 “마케팅에서 성공하려면 고객의 마음 속에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바람직한 자리를 잡도록 하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재벌기업들은 해마다 수조원을 브랜드 마케팅에 쓴다. 그럼에도 국민의 반기업 정서가 높기만 해 ‘마음 속 바람직한 자리’를 잡는 데 실패하고 있다. 공들여 쌓은 브랜드 이미지가 비자금, 담합, 세금포탈 등 범법 행위 적발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소비자 접점이 많은 B2C 계열사는 그나마 이미지 관리에 철저한 편이지만, 외부 노출이 덜 되는 B2B 계열사는 재벌 총수의 비자금 창구로 전용되거나 담합 적발이 반복되는 우를 범한다. 자연스레 사회공헌 등 평소 기업집단의 존재가치를 홍보하는 문구는 진정성을 잃게 된다.
 
재벌이 문어발식 경영을 하면서 기존에 내세웠던 경영철학과 정면 배치되는 이율배반의 모순도 드러난다. 돈 되는 사업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단기 경영실적에 치중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자주 발견되지만 재벌도 예외는 아니다. 재벌은 경영권 승계에 대한 비판이 일 때마다 총수경영은 경영철학과 비전을 향한 일관성, 통일성, 장기투자, 집단적 의사결정에서 강점이 크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동일 기업집단 내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재벌 논리는 설득력을 잃는다.
 
포스코는 계열사가 친환경 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운영하면서도 미세먼지 문제가 불거진 석탄발전에 추가 투자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스발전의 경제성이 떨어지자 대체 투자에 나선 것이다. 기업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석탄발전에 따른 환경문제 등 사회적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똑같은 사례가 재벌총수 집단인 SK와 GS 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재벌총수의 일관성 있는 경영철학이나 기업가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쪽에선 가스발전으로 기후변화 체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한쪽에선 석탄발전을 짓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
 
이들의 줏대 없는 에너지 사업은 결국 암초를 만났다. 문재인 정부의 탈석탄, 친환경 정책으로 석탄발전 사업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해당 대기업들이 가스발전을 방어해온 논리는 스스로를 향하는 칼이 된다. 배출권거래제의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이 어렵고,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며, 국제 추세에도 역행한다면서 석탄발전을 공격했었다. 이들은 다시 석탄발전에 진입하는 명분으로 사업 다각화와 안정성 외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지만 정작 지역민들은 건강에 대한 우려로 반발이 심하다.
 
확연하게 비교되는 사례도 있다. 한화는 기존에 LNG, 석탄발전을 운영하다가 태양광 사업에 진출한 뒤로는 화석연료 발전 사업에 일체 투자하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을 통해 풍요로운 국가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에 기여한다’는 경영철학에 부합하는 행보다. 김승연 회장이 과거 태양광에 대해 “눈앞의 이익이나 불확실한 사업환경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던 말은 석탄발전으로 변절한 대기업들에게는 따끔한 충고가 된다. 물론 태양광 업황이 여전히 어려워 앞으로도 일관성을 유지할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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