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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평양 시간 통일'에서 시작…남북 공동번영의 길 열렸다
‘판문점 선언’으로 경제협력 눈앞…북핵 실험장 폐쇄, 국제사회 공개해 비핵화 검증도
2018-04-29 16:23:14 2018-04-29 16:23:14
[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남북 공동번영의 길이 열렸다.
 
우선 남북한의 ‘30분 차이’가 사라진다. 북한이 지난 2015년 8월15일부터 사용해온 평양표준시 대신 서울표준시를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향후 전개될 남북의 각종 교류사업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선행 조치로 풀이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오전 브리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울 표준시보다 30분 늦는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내외 간 환담에서 “평화의 집 대기실에 시계가 2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를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이건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며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해도 좋다”고 했다.
 
남북이 현재 30분 차이를 보이는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통일하는 데 합의했다. 사진은 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일 평화의집 1층 접견실에 걸려 있던 서울과 평양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사진/청와대
 
윤 수석은 “표준시의 통일은 북측 내부적으로도 많은 행정적 어려움과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라면서 “김 위원장이 이렇게 결정한 것은 국제사회와의 조화와 일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이자 향후 예상되는 남북, 북미 간 교류 협력의 장애물들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결단’은 사전 실무진 사이에서 논의된 내용이 아닌 당일 회담 현장에서 즉석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예정된 합의가 아니라 (양 정상 간) 대화 과정에서 나온 합의”라며 “정상회담 당일 발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오늘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오후 환영만찬 전 이 내용을 공개한 것을 감안하면, 문재인 대통령과의 ‘도보다리’ 40분 독대 이후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결정은 남북경협을 강조한 판문점 선언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청와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이유로 “이번 회담에 경제문제는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 합의문 주요 내용 중 상당수가 남북경협과 그를 위한 민간 교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이자 본질적 문제였던 비핵화는 오히려 선언 마지막 부분인 3조4항에 들어갔다.
 
1조 3항에 명시한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은 개성공단 재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조6항은 아예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남북경협)들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고 적었다. 5월말·6월초 북미 정상회담이 원만하게 풀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완화된 이후에야 남북경협을 논의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남북 정상은 경협을 선언문에 포함시켜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환영만찬 디저트 ‘민족의 봄’을 개봉하여 보고 있다. 사진/판문점공동취재단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북부 핵 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실행할 것이라며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조만간 북한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검증가능한 비핵화의 첫걸음이다. 비핵화를 통한 개방과 경제개발 의지를 드러낸 것이며,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 효과도 기대된다.
 
윤 수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오전 정상회담에서 이와 같은 뜻을 밝히고 “일부에서 못쓰게 된 것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더 큰 2개의 갱도가 더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즉시 환영했고, 양 정상은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 초청 시점 등에 대해서는 북측이 준비되는 대로 일정을 협의키로 했다. 초청 시기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이 유력하다. 윤 수석은 “김 위원장의 핵 실험장 폐쇄 및 대외 공개 방침 천명은 향후 논의될 북한 핵의 검증 과정에서 선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미국이 북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와 대화를 해 보면 내가 남쪽이나 태평양 상으로 핵을 쏘거나 미국을 겨냥해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어 “조선 전쟁의 아픈 역사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한 민족이 한 강토에서 다시는 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결코 무력 사용은 없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약속했다.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첫 주말인 29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남양주종합촬영소 내 판문점 세트장에서 시민들이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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