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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이동걸 산은 회장의 아전인수식 '빈 곳간론'
2018-07-27 08:00:00 2018-07-27 08:00:00
지난 24일 이동걸 회장은 특별한 공지 없이 산업은행 여의도 본점 기자실을 내려왔다. 기자실 급방문은 이 회장의 '전매특허'다. 이 회장은 작년 9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기자실을 기습적으로 방문해, 산은을 둘러싼 오해 등에 대해 장시간 해명을 해왔다.
 
이날 이 회장이 강조한 것은 '빈 곳간론'이다. 이 회장은 "산은이 과거 구조조정을 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냈지만, 그 손실에 대해 정부에서 단돈 1원도 지원을 안 해줬다"며 "빈 곳간을 채워야 산은이 정상적인 정책금융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5일 국회 업무보고에서도 야당 의원이 산은의 구조조정 부실을 지적하자 이 회장은 예의 ‘빈 곳간론’을 꺼내들었다. 정책적인 구조조정 방침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기업이 쏟아지면서 산은은 정부의 지원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이동걸 회장의 '빈 곳간' 발언은 자본확충을 위한 군불지피기로 보인다. 현재 산업은행은 기획재정부에 수천억원 규모의 증자 신청을 한 상태다. 정부가 100% 참여하는 증자는 민감한 이슈다. '국책은행에 혈세를 또 쓰느냐'의 비난 여론을 염두에 두고 이 회장이 사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산은이 그동안 한계기업들에게 적용한 구조조정 3대 원칙을 떠올리게 된다. 부실 경영에 대한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이 있어야 하고, 경영진과 종업원 모두가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을 내놓아야 신규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해서 내로라하는 조선·해운사들이 문을 닫았다.
 
국민 혈세를 수혈받기 바라는 산은이 정작 3대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산은이 취약업종 부실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2년 전 내놓은 조직 쇄신안은 진척이 더디다. 이동걸 회장은 산은의 역할과 규모를 축소하는 지난 정부때의 조직 쇄신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회장은 언론홍보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제한된 재원을 갖고 홍보 정책을 '효율적'으로 하려다 보니, 일부 언론사들이 이를 오해해서 본인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비효율적인 홍보 역량을 '빈 곳간'을 채우는 데 쓰겠다는 설명이지만, 회장이 직접 언론정책을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이 회장이 차기 금융위원장 하마평에 오르자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이 회장의 공과가 평가대에 오르면서 일부 비판적인 기사들이 나간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빈곳간론을 내세운 홍보정책을 통해 '언론 길들이기'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 회장에 대한 비판기사를 두고 "소송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산은 공보실은 과잉대응으로 읽힌다. 
 
구조조정 기업에는 냉혹하게 갖다댔던 원칙을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게 적용하는 이중적인 잣대, 비판과 지적에 대한 과잉 대응은 결국 '내가 하면 문제가 없다'는 인식에 다름 아니다. 자기 논에 물대기식의 정책인 셈이다. 이동걸 회장의 '빈 곳간론'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종용 금융팀장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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