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운전자 바꿔치기'로 음주 측정하면 '범인도피 방조'
음주운전 사고 낸 경찰관…동승자 '운전자 바꿔치기'
대법 "범인 조작 방조하는 행위, 방어권 남용" 판결
2026-06-18 17:04:57 2026-06-18 17:12:20
[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대법원은 음주 운전 사고를 낸 경찰관이 동승자의 '운전자 바꿔치기' 제안에 동조해 허위자백을 방조한 행위에 대해 범인도피 방조 혐의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범인도피 방조, 도로교통법 위반(음주 운전)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당시 교통 단속 경찰관이었던 A씨는 지난 2023년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하다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사고 직후 조수석에 함께 타고 있던 친구 B씨가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해주겠다"고 제안하자 A씨는 이에 동의하고 뒷좌석으로 옮겨 앉았습니다.
 
이후 B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내가 운전했다"고 말하면서 A씨 대신 음주 측정까지 했습니다. A씨도 단순히 침묵에 그치지 않고, 보험회사에 전화해 "B씨가 운전했다"고 말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이상함을 느낀 보험회사 직원의 신고로 이들의 범행은 발각됐습니다. A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097%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해임됐습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범인도피 방조와 음주 운전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에서 쟁점은 실제 음주 운전 사고를 저지른 A씨의 방어권이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동승자가 허위 진술하는 걸 방조한 A씨의 행위를 방어권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대법관 8명의 기존 판례와 법리대로 A씨를 범인도피 방조 혐의로 처벌하는 게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방어권 범위 안에 있어 범인도피죄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범인이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허위자백을 촉진·강화·용이하게 하는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대법원은 이날 "범인 조작형 도피 행위는 진범의 존재를 감추고 수사 방향 자체를 왜곡한다"며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일반 국민의 법 감정에도 어긋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에서 교사와 방조를 구분해 방조에 대해서만 방어권 남용 법리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범인도피방조죄에 관한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적용 배제는 결국 처벌 가능성이 높은 범인도피 교사 행위까지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밖에 A씨의 양형 부당 주장에 대해서는 적법한 상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반면 대법관 5명은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반대 의견은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비호하려는 범인도피죄 본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일 뿐 스스로 도피 행위를 한 범인을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라며 "자기 도피 행위는 범인도피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범인의 방조 행위는 교사 행위와 달리 타인을 타락시키거나 새로운 범죄자를 창출하는 행위반가치가 없다"며 "본질적으로 자기방어와 이익을 위한 인간 본성에 따른 자기 도피 행위의 연장선에 있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인의 방조 행위에 대해서까지 예외적 방어권 남용 법리를 확대 적용해 범인도피죄 처벌 영역을 넓히는 것은 법리 적용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