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무려 100년도 더 된 과거에 작가 현진건이 단편 『술 권하는 사회』에서 갈파했듯, 우리 역시 오늘날 같은 질문에 휩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 소설에서 (무식한) 아내는 동경에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남편이 매일 밤 만취해서 들어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누군가 ‘아주 몹쓸 사람들’이 남편에게 술을 먹인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그자가 사회라고 말한다. 아내는 사회를(사회라는 사람을) 모른다. 그녀는 오늘 밤도 술을 마시러 나가는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몹쓸 사회가 왜 자꾸 저이에게 술을 권하는고.” 그녀는 사회를 알지 못하지만 못 됐다는 것만은 안다. 그러나 이런 아내보다 정작 문제는 남자들이다. 자꾸 사회 탓만 하는 건 무능하고 무책임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술꾼은 이제나저제나 늘 사회 탓, 세상 탓을 한다. 그것이야말로 술안주로, 안주의 양념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술 권하는 사회는 없다. 술 먹을 핑계가 되는 사회 분위기, 사회 현상만이 늘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사회 탓 그만하고 그냥 마시는 것이다. 술은 그냥 마시는 것이다. 자조적으로. 외롭고 고독하게.
서울 종로구 종각 젊은의거리에 주류운반차량이 주류를 배달하기 위해 서 있다.(사진=뉴시스)
이별주는 있어도 재회주는 많지 않다. 이별주는 맛있어도 재회주는 그냥 그렇다. 장례식 빈소에 차려진 술상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장례식에서 많이 울고 침통해 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 왁자한 분위기이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하는 사람들, 말로만 들었다가 여기서 처음 뵙는다며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 천지다. 기이한 풍경이다. 다들 꽤 유쾌하게 술을 마신다. 이별은 웃으면서 해야 한다는 한국식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장례식 빈소의 풍경은 대체로 축제 분위기다. 영화인 중에 최근 타계한 인물은,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감독 조철현이란 인물이다. 67세의 나이로 담도암을 이기지 못해 사망했고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영화인들은 하나 같이 침통한 기색이었다. 며칠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음악평론가 강헌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영정에 국화를 놓거나 향을 피울 때까지 우울해한다. 진심으로 슬퍼한다. 울기도 한다. 하지만 영정 앞을 떠나는 순간 마음과 태도를 바꾼다. 사람들과 서로 악수를 나누고 더 이상 죽지 말자고 다짐하며 육개장을 먹거나 소고기무국을 후루룩 쩝쩝 마시듯 먹고 종이컵에 소주와 맥주를 부어 마신다. 술판을 벌이기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고인의 흉을 보며 낄낄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별주는 슬픈 것이 아니다. 사실은 삶이 이어지고 있고 자신들이 생존해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요즘의 한국 사회야말로 무언가와 자꾸 이별하게 만든다. 배신하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고 자신의 선명성만을 내세우며 혹세무민 아닌 혹세무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중들은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결별하고 싶어 한다. 이때의 이별주, 절연주도 마찬가지이다. 현진건의 주인공 남자에게 그러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몹쓸 사회가 이별주를 마시게 하는 셈이다. 이런 술은 대체로 만취 각이다. 스스로들의 삶이 자꾸 구차해지는 판이다.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참이다. 잘됐다. 부어라 마셔라, 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고, 다. 한국사회는 지금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고 술에 만취하게 만드는 사회이다.
이제 오동진의 알코올 일지를 끝내려고 한다. 오래면 오래고 짧다면 짧은 기간 연재를 이어갔다. 독자들의 반응은 쉽게 접하지 못했으나 이 글을 위해 새롭게 술을 마시고, 술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 됐다. 우리는 왜 술을 마시는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하게 됐다. 술보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됐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해 더욱더 신중하게 된 시간이었다. 술은 사람을 친하게 만들지만, 술로 친하게 된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게 됐다.
술은 술이다. 술이 자신을 잠식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절주가 필요하다. 절주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끊어 마신다는 것을 말한다. 소주 한잔을 한입에 털어 넣는 것, 맥주 500cc를 한 번에 마시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제해야 한다. 소주 한잔을 세 번에 나눠 마시는 게 좋다. 맥주는 찔끔찔끔 잘라서 마시는 게 좋다. 와인과 위스키는 딱 한 잔 정도가 좋다. 특히 샴페인은 한 번에 ‘훅 간다.’ 실로 조심하는 게 좋다. 술은 몇 번을 강조하지만 끊어서 마시고 잘라서 마시는 것이다. 시간도 9시나 늦어도 10시를 넘기지 않는 게 좋다. 10시 이후에 그래도 모자라면 집에서 혼술로 가볍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술집 몇 군데를 소개해 드린다. 문래동 골목길에 은진포차라는 곳이 있다. 여기는 병어조림 맛이 좋다. 병어조림은 인현동 시장 골목에 있는 진미네가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은진포차 쪽 생선이 더 크다. 가성비가 좋다. 병어와 같이 넣고 푹 조린 무만으로도 소주나 맥주를 몇 잔 마실 수 있다. 예전 같으면, 그러니까 30~40대쯤에는 그 조림 하나만으로도 소주 각 1병 각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렇게 마시면 이런 소리를 듣는다. “그치는 아직도 술을 많이 마시대?” 그러면 누군가가 이런 말로 받는다. “아직 젊나 보네. 술을 그렇게 마시는 인간이 아직도 있다니. 쯔쯔.”
홍대입구역 주변에는 청기와갈비라는 데가 있다. 홍대 사거리에는 아주 오래전 문을 연 청기와 주유소가 있었다. 십수 년 전 없어졌다. 사람들은 늘 홍대에서 만날 때 청기와 주유소 앞으로 와, 라고 얘기하곤 했다. 몇 시에 만나자는 얘기도 정확하게 하지 않았다. 6시나 7시에 거기서,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대체로 같은 시간에 청기와 주유소 앞에서 서성이는 그 날의 술친구를 발견하곤 했다. 청기와갈비는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스마트폰도 카카오맵도 없던 시절이다. 적당한 시간에 만나 주변을 찾아가던 대폿집 같은 곳이다. 청기와갈비 집은 일종의 친인척 경영 술집이다. 최저임금 일당을 줄이기 위해 ‘브레이크타임’을 두지 않는 곳이다. 3시 이후에 자리에 앉아 소맥을 말아도 나가라는 눈치를 주지 않는다. 나이 지긋한 분이 꺼져 가는 숯불을 갈아 준다. 삼겹살을 구워가며 낮술을 먹기에 그만인 곳이다.
술은 술일 뿐이므로, 술을 마시더라도 자신을 잠식하게 만들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절주해야 한다는 게 필자가 술에 관해 남기는 한마디다.(사진=오동진 제공)
낮부터 술을 마시고 한 잔 더 하고 싶으면 4시쯤 동부이촌동 일미 부대찌개 스테이크 같은 곳으로 가면 좋다. 강변을 타고 택시로 가면 택시비는 1만 원 안팎이다. 일미식당에는 철판구이가 있다. 소고기와 소시지, 햄과 베이컨과 양파를 넣고 은박을 입힌 철판에 섞어서 구워 먹는 것이다. 여기의 맛은 장맛이다. 고기 소스와 겨자, 마요네즈를 섞어 만든 장에 고기든 베이컨이든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대체로 오징어찌개를 곁들이게 되는데 맛이 나름 환상이다. 소맥에 어울리는 철판구이 고기 안주이다. 여기도 술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이촌동 동네만큼 오래된 곳이고 한동안 꽤 성업했던 터라 경쟁적으로 서너 개 음식점이 나란히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일미집 하나만 남아 있다. 경기가 안 좋아 폐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주인장들이 나이를 워낙 많이 잡수신 분들이고 아마 더 이상 노동력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러는 이미 고인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술 권하는 사회가 반복되고 있다고 한들 술판에서 정치판 얘기는 과열되게 할 필요가 없다. 지난 수십 년간 나라가 개판인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우리 모두 그 과정을 통해 슬기로워졌다. 적어도 술판을 뒤집을 만큼 어리석게 정치 얘기로 네 편 내 편, 하지 않을 정도는 됐다. 알겠어, 너의 생각을, 너의 생각도 존중하겠어, 라고 성큼 물러날 정도로 교양을 배운 정도들은 돼 있다. 술 권하는 사회가 거꾸로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도록 만들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되 권하지는 않고 상대의 분노와 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만큼 스스로 단련시켰다. 세상의 술이 좋은 건 연대의 힘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술이 유용한 건, 사람들이 동감과 공감의 폭을 넓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독한 건강 문제가 아닌 한, 어디 가서 ‘나는 술을 안 마시는데요’ 소리나 ‘내가 술을 안 좋아해서요’ 같은 말을 남발하는 것은 썩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적당히 맞춰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적당히 마시는 법을 배우는 게 좋다. 천천히. 끊어서. 잘라서 마시기.
브라질에서 만난 건강한 청년 L은 술 마실 때 자꾸 물을 권한다. 술 마시기 전에 아예 물 한 잔을 쭉 들이켜라고 한다. 중간중간에도 물을 자주 먹으라고 따라 준다. 기자들은 (기사) 물 먹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그래서 깡술만 마시다 취하고 실수하는 일이 많다. 세상사에 물은 먹지 않되 술자리에서는 물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다. 물론 안다. 그게 잘 안된다는 것을. 어쭙잖은 30회, 15개월, 1년 3개월의 연재를 마친다. 이 연재를 끝내면 술을 당분간 끊게 될까, 도 생각했지만, 언감생심일 것이다. 아듀, 뉴스토마토 독자들. 세상의 술꾼들도 안녕. 다들 살아서 만나지 못하면 저세상에서 거나하게 한잔하기를. 챙! 위하여!
오동진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 연재를 마칩니다. 오랫동안 술을 부르는 칼럼을 보내온 필자와 그 칼럼에 취했던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_편집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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