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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 올해에만 네 번째…정부 대응은 '깜깜이'
다야니 패소 이유 함구·론스타도 최근에야 알려…전략이냐·책임회피냐 논란 확대
2018-07-26 06:00:00 2018-07-26 06:00:00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최근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잇따라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정장치를 생각하지 않고 국가 간 협정에서 ISD를 포함한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라며, 향후 관련 소송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부가 걸린 문제인 만큼 우리 정부가 정확한 절차 진행을 공개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ISD 소송 증가할 것"
 
올해 들어서만 엘리엇매니지먼트, 메이슨캐피탈, 쉰들러, 재미교포 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네 건의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엘리엇과 메이슨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주장한 피해액은 각각 최소 7억7000만 달러(약 8700억원), 1억 7500만달러(약 1880억원)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는 금융감독원이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를 허용한 것은 부당하다며 3000억원대 ISD 제기를 위한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통상전문가들은 한미 FTA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혔던 ISD가 외국투자자·외국기업에게 새로운 쟁소 수단으로 알려지면서 로펌들도 이를 적극 활용하는 등 관련 소송은 점차 늘 것으로 내다봤다. ISD는 우리 정부의 법·제도로 손해를 본 미국 투자자가 국제중재기구에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맺은 양자 간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에도 ISD 조항이 포함됐는데, 전문가들은 당시 지적했던 위험성이 가시화됐다는 평가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안정장치를 생각하지 않고 협상을 타결하고, 투자자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미국적 투자 개념이 그대로 수용된 점 등이 문제로 꼽혔다.

소극적인 정부, 책임 회피 비판
 
소송 비용과 배상금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됨에도 우리 정부의 ISD 대응이 ‘깜깜이’로 이뤄진다는 점도 지적됐다. 최근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ISD에서 패소한 우리 정부는 패소 이유나 판결문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현재 중재판정을 무효로 되돌리기 위해 영국 고등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승소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2012년에 제기된 론스타 소송 역시 최종 심리기일은 2년 전에 마쳤으나, 론스타가 손해 봤다고 주장하는 5조원의 과세 피해액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원천징수금 등이 공개되지 않았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가 법무부에 론스타 판정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지난 20일이 돼서야 법무부는 중재판정부의 절차종료선언과 판정 선고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SD 패소 시 금전적으로 상당한 액수를 외국기업에 배상해야 하고, 이에 따른 예산 부담과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며 “관련 정책 결정자와 후임자들은 되도록 임기 동안의 발표를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송기호 변호사도 “ISD 정보 투명성이 낮은 이유는 운용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 없어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이란의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ISD에서 패소한 판결문도 공개하지 않는 등 ISD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밀성 유지 중요" 지지론도
 
반면, ISD 소송 절차의 공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의견도 있었다. 국제분쟁 전문가 김재헌 법무법인 천고 대표변호사는 “여러 분야에서 여러 시각을 가지고 의견을 내는데, 모든 걸 다 공개해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라며 “분쟁을 효율적으로 처리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ISD 중재절차의 불투명성 등의 지적에 대해 “론스타 사건 등은 근거가 되는 투자협정에 정보공개를 허용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절차의 기밀성을 중시하는 ISD 제도의 성격상 상대방과 협의 없이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관련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향후 절차가 정식 개시될 경우 판정부가 부정적 예단을 갖게 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원화된 부처 대응도 문제 
 
불투명한 진행 과정뿐 아니라 진행 방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협상은 통상부, 대응은 법무부로 부처가 이원화돼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각 조항의 해석과 뉘앙스를 잘 모를 텐데 엘리엇에 제기한 ISD를 법무부가 주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우리 정부를 대리하는 국내·외 로펌 진행하는 소송에서 정확한 국내 조항과 뉘앙스 분석은 협상 당시 참여했던 사람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부에 업무 조율 사항 등에 대해 문의했으나 법무부는 “엘리엇 ISD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소송 대응 전략상 구체적인 업무 방식에 관한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우리 정부가 ISD 중재에 대한 대응능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해 줄소송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해결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크게 ISD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정부 역량 안에서 잘 운용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재검토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IDS가 아니더라도 자본 유치 능력이 있고 선진적인 사법 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경우 우리나라 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ISD를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반면, 국가 간 협정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조항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거나, 유럽식 투자법원제(ICS)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2015년 6월29일 당시 야당 의원들과 민변 소속 변호사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론스타와 한국 정부 사이 진행중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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