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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김정은의 진심 드러날 한 달
2019-01-29 06:00:00 2019-01-29 06:00:00
최한영 정치부 기자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그 해 국정운영 방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는 예년과 다른 측면이 많았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 계속 등장했던 ‘김일성-김정일주의’가 2년 연속 빠진 것이 눈에 띈다. 선대 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 이름은 물론 이들을 일컫는 ‘수령님’ ‘장군님’ 표현도 올해 신년사에 없었다.
 
대신 김정은 시대 통치강령이라 할 수 있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뒷받침하는 표현들이 상당수 나왔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인민을 숭배하고 떠받들며,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 의거해 풀어가는 혁명사상’으로 정의된다. ‘선군(先軍)’을 토대로 통치자 시각에서 인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하향식 통치전략을 내세웠던 김정일 시대와 구분된다. 김 위원장이 선대와 구별되는 통치기조를 확립하는 단계로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지난해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기존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발전 노선을 채택했던 것과도 연결된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친 인민담론’은 선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전 마지막 친필문건이 ‘평양 주민들에게 물고기를 공급하는 방안’으로 알려져 있다. 문득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사흘 전인 지난해 6월9일, 노동신문이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대동강수산물식당 방문 사실을 1·2면에 걸쳐 보도한 사실이 겹친다. 미국 정상과의 첫 대면을 앞두고, 선대 유훈 실천과 자신의 경제발전 노선까지 대내외에 천명하는 절묘한 장면이었다.
 
북미 양측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자를 2월 말로 정했다. 돌발변수가 없다면 한 달 내에 향후 한반도 정세를 결정지을 가장 큰 사건이 전개된다.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문을 놓고 상징적인 합의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 만큼, 가장 큰 관심사는 북미가 비핵화-상응조치 관련 어느 선까지 의견접근을 이룰지에 모아진다.
 
현재까지 흘러나오는 내용들은 우려스럽다. 정상회담 개최 시점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스몰딜’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등 핵·미사일 관련 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일부 폐기 카드를 내놓고, 상응조치로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교류 사업에 대한 제재면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에 가해지는 ‘현재 핵’ 위협을 그대로 둔 채 대북제재 해제를 시작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까지 보여온 경제행보가 결국 자신들의 ‘핵 보유국 인정’을 위한 전술이었다는 비판이 나올 경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핵 문제를 둘러싼 우리 정부의 목표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과가 궁금할 뿐이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들고 나왔던 김정은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와 북미 간 실무대화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이제 한 달 남았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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