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에 ‘거짓’ 포스트잇 붙인 시민들 첫 재판…비폭력 시위 처벌 기준은?
활동가 측 “역사 왜곡에 항의한 정당행위”
법원, 방식·영향 따져 ‘형사처벌’ 여부 판단
2026-11-02 16:21:36 ㅣ 2026-11-02 16:44:44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보호’를 강조한 전쟁기념관 전시물에 포스트잇 등으로 ‘거짓’이라는 글자를 붙인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활동가 측은 포스트잇을 붙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시물의 효용을 해치지 않았고, 역사 왜곡에 항의한 정당행위였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전쟁기념관의 베트남전쟁 전시물에 '거짓'이라는 문구를 붙였다가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첫 재판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서울서부지법 형사8단독 이세창 부장판사는 2일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 4명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전시된 채명신 당시 주월한국군 사령관의 훈령 팻말 복제본에 포스트잇 등을 붙인 혐의를 받습니다. 전시물에는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활동가들은 해당 전시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를 외면하고 한국군의 활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한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수차례 민원에도 전시가 바뀌지 않자 쉽게 제거할 수 있는 포스트잇 등의 부착물로 항의했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은 2023년 1심과 2025년 항소심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살해 사실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해당 전시물이 공용물건손상죄의 대상인지, 부착 행위가 전시물의 효용을 해쳤는지 여부 입니다. 공용물건손상죄는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손상하거나 효용을 해친 경우 적용되며, 법정형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3년 이하의 징역형인 일반 재물손괴죄보다 무겁습니다.
 
활동가들을 대리하는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는 “전쟁기념관은 국가기관이 아닌 특수법인인 전쟁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시설”이라며 “전시물 자체가 형법상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활동가 측은 전시물의 효용을 해치지 않았고 손상의 고의도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훼손을 피하려고 접착력이 약해 쉽게 떼는 포스트잇과 마스킹테이프를 사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어 공익적 항의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됐음에도 전쟁기념관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시하고 있었다”며 “전시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을 수차례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직접행동에 나선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공론장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 같은 활동가들의 비폭력 시위에 대한 처벌 기준에 관심이 쏠립니다. 특히 법원은 최근 시민들의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시위의 구체적인 방식과 영향을 따져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1일 용산정비창 부지 펜스에 ‘공공주택 100%’ 등의 문구를 적어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낙서가 펜스의 주요 기능인 방음·방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법원도 2024년 5월 두산에너빌리티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항의하며 회사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를 뿌린 기후활동가들의 유죄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곧바로 세척해 잔존물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또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 위험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해 4월에 킨텍스 무기박람회에서 반전 연주를 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활동가 8명의 유죄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전체 1350개 부스 중 1곳에서 확성기나 앰프 없이 약 5분간 진행한 뒤 자진 종료했다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입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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