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한국 제조업이 공장 안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숙련자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업 판단과 공정 운영 경험인 '암묵지'를 인공지능(AI)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 산업 인공지능 전환(AX)을 진행하면 수출로도 연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현장의 기술을 데이터로 옮길 역량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 협력업체를 함께 전환시키는 일이 선결 과제라고 짚었습니다.
양 부지사는 지난달 30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산업현장 노하우 중 가장 고급 데이터는 한국에서 만들어질 거라고 본다"며 "일본과 독일, 중국도 잘하고 있지만 데이터 보안을 지키면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한국에 있고, AX만 잘되면 AX 모델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가 지난달 30일 산업현장 AX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국내 산단 AX 초기 단계"…경북은 철강산업 일부 공정 적용
제조 현장에서는 사람의 경험이 녹아든 판단이 중요합니다. 공정별 불량 발생 조건이나 설비 운용 경험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AI에 학습시키면 개별 기업의 숙련을 다른 생산 현장에도 적용할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나 데이터를 확보하는 단계부터 기업 간 격차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양 부지사는 국내 산업단지의 AX를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습니다.
제조업의 AX는 생산라인에 로봇을 들이는 작업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양 부지사가 제시한 출발점은 기업 내부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입니다. 양 부지사는 "중소기업은 디지털 전환(DX)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AI 학습과 추론을 거쳐 경영과 물류를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최종적으로 생산공정의 피지컬 AI까지 연결하는 구상입니다.
현재 경북에서는 포항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일부 공정에 AI를 적용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 부지사는 참여 기업들이 AX를 통해 불량률이나 생산단가 개선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공장 전체 공정이 AX로 전환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양 부지사는 내년 하반기부터 AX 기업이 통계에 조금씩 잡히고 2028년에는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경북도는 철강, 반도체, 이차전지 등 업종별 AX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한 기업의 성공 사례를 협력업체와 주변 산업단지로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중견 앵커기업과 거래 관계에 있는 협력업체가 함께 전환하는 수직적 모델과 유사 업종 기업들이 데이터 활용 경험과 연산 인프라를 공유하는 수평적 모델을 병행한다는 계획입니다. 경북도는 올해 안에 구체적인 로드맵 정리를 끝내고 내년부터 AX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는 방침입니다.
구미의 HT로보틱스 사례가 수직적 모델에 해당합니다. 양 부지사에 따르면 경북도는 지난해부터 이 기업과 협력업체의 공동 AX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해당 모델이 산업부 우수 모델로 선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경북도는 이런 방식으로 단독 투자가 어려운 30~50인 규모 기업의 참여를 늘리려 합니다.
중소기업 AX의 첫 장벽은 투자 여력
양 부지사는 협력업체의 AX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자금을 꼽았습니다. 그는 "결국은 돈"이라며 "그다음에는 기업가가 AX를 왜 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기업이 AI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설비 데이터 수집과 정리부터 소프트웨어 구축까지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업체는 AI 도입 이전 단계에도 투자해야 합니다.
기업 경영진의 판단도 변수입니다. 양 부지사는 어떤 공정에 AI를 적용해야 생산에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이해해야 투자가 이뤄진다고 봤습니다. 실제 효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공정의 성공 사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양 부지사는 정부 정책의 큰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소규모 기업에 돌아가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는 30~100인 안팎의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더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방정부 역시 인프라 구축과 기업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자체적으로 모두 충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AI 공급 기업과 지역기업 사이의 간극
예산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현장에 밀착할 AI 전문 인력입니다. 양 부지사는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역 제조업의 약점으로 들었습니다. 생산공정을 아는 사람과 AI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협업해야 하지만 지역에는 이를 연결할 공급 기업이 충분하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양 부지사는 "AX는 한두 번 만나가지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밀착해 있어야 성공적인 AX가 된다. 공급 기업과 수요 기업이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조업 AX에서는 일회성 소프트웨어 납품보다 현장 데이터를 정리하고 AI 모델을 반복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경북도는 지역 AI 공급 기업 육성과 수요 기업 연결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컴퓨팅 인프라도 지역 기업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고 봤습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더라도 산업단지 중소기업의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현장 전환과는 거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경북도는 내년 경산에 컨테이너형 엣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엣지 데이터센터는 생산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규모 연산시설입니다. 양 부지사는 "경북에도 거대 AI데이터센터들이 건립되고 있고 추진 되고 있는 것이 많다"며 "경북은 전력 자급률이 230%에 달할 정도로 전기가 풍부하기 때문에 굉장한 이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원 기관의 역할 조정도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산업단지 기반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과 기업의 기술 도입을 지원하는 테크노파크가 지역별 수요에 맞춰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 부지사는 중앙정부의 정책과 예산이 현장 실행 기관까지 연결되는 소통 체계가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경북도는 제조업뿐 아니라 농업 분야의 AX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역 농산물 판매 플랫폼인 '사이소'에 AI 기능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품종과 날씨 및 경매가격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농산물 판매 시점을 판단하는 방식이 예시로 제시됐습니다.
양 부지사는 "그래도 기업들 사이에서 AX의 당위성을 깨닫고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많이 무르익었다"고 진단하면서 "한국은 빨리 해내는 기질이 있기 때문에 시작만 한다면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AX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포항=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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