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수천년 전 인류는 강과 호수 주변의 바위에 동물과 사람의 형상, 기하학적 문양을 새기며 자신들이 바라본 세상을 남겼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는지 짐작하게 하는 흔적입니다.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는 이 같은 흔적을 녹여낸 박상현 작가의 신간 '백야의 땅, 바위그림 시간여행' 신간을 4일 펴냈습니다. 백야의 땅, 바위그림 시간여행은 러시아 북방에서 노르웨이까지 이어지는 바위그림 유적 탐방을 통해 선사 인류의 삶과 믿음,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했던 방식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저자가 직접 찾아간 북방의 암각화 유적과 현지에서 경험한 풍경, 사람들과의 만남을 함께 담았습니다.
특히 이 책은 박성현 저자가 지난 2023년 1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30회에 걸쳐 매주 뉴스토마토에 연재한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이라는 기획을 묶어 발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해당 연재는 같은 기간 뉴스토마토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30회에 걸친 바위그림 시간여행 영상 에피소드로도 공개된 바 있습니다. 영상에는 박 저자가 북방의 암각화 유적을 직접 탐방하며 촬영한 사진과 영상 등을 통해 바위그림의 실제 모습과 주변 풍경을 전달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는데요. 바위그림 시간여행을 더 직관적으로 느끼고 싶은 독자들은 뉴스토마토 영상 시리즈를 통해 책에 등장하는 유적과 선사 인류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살펴보면, 내용을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류 흔적 찾는 여정에서 출발
책은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않은 오래전 인류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출발합니다. 북방의 강과 호수 주변에는 사람과 동물,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이 바위 위에 남아 있습니다. 저자는 이 그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던지며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자연과 세계를 상상하도록 이끕니다.
특히 저자는 바위그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정답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는 그림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그림 속 형상들을 직접 살펴보고 의미를 상상하면서 수천 년 전 인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안내합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여정은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에서 시작됩니다. 저자는 호수 주변에 남아 있는 바위그림을 살펴보며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갔는지 탐색합니다.
오네가호수에서는 이른바 3인조와 악마로 불리는 형상, 고니와 관련된 그림, 다리가 달린 원형 문양 등을 만납니다. 저자는 이러한 형상들을 통해 고니를 숭배했던 신석기 부족의 믿음과 당시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했던 방식을 살펴봅니다. 석양에 빛나는 바위그림을 따라가며 오래전 사람들이 남긴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두 번째 부분은 백해로 이어지는 비그강의 바위그림을 다룹니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다양한 생활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신석기 예술가들의 캔버스로 불리는 잘라브루가를 찾아 사슴의 계절 이동과 스키를 탄 엘크 사냥꾼 등의 그림을 살펴봅니다.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갔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책은 바위그림에 담긴 사냥과 동물의 움직임뿐 아니라 유적이 발견되고 보존되는 과정, 개발과 파괴 속에서 선사시대의 기록이 겪은 변화도 함께 다룹니다.
이어 저자는 '악마의 발자국'이라는 뜻의 베소비슬레드키를 탐방하고, 백해의 도시 벨로모르스크에서 솔로베츠키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북극 지역의 돌미궁과 '세이드'라 불리는 거석을 찾아 북방 지역에 남아 있는 다양한 문화적 흔적도 살펴봅니다.
세 번째 부분은 러시아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남아 있는 암각화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저자는 칸달락샤를 거쳐 움바강의 급류 너머에 있는 카노제로 암각화 유적을 찾아갑니다. 이곳에서는 고래와 바다 사냥꾼의 형상을 통해 오래전 북방 사람들이 바다와 맺었던 관계를 살펴봅니다.
카노제로에서 만난 바위그림은 육지의 사냥 문화뿐 아니라 북극권의 해양문화까지 시선을 넓히게 합니다. 저자는 고래와 바다 사냥꾼의 흔적을 따라가며 당시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갔고 자연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탐색합니다. 이후 순록민 사미족의 마을로 이동해 순록과 고래의 자취가 남아 있는 북극 지역의 문화도 살펴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분에는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 알타의 암각화 유적을 찾아가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노르웨이 시르케네스를 거쳐 알타에 도착한 저자는 알타피오르에 새겨진 옛 북극 주민들의 생활상을 살펴봅니다.
선사시대 흔적과 암각화 통한 인류의 삶 조명
알타의 바위그림은 선사시대 북극 주민들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저자는 현지 박물관에서 만나는 선사시대의 흔적과 암각화를 통해 북방 인류의 삶을 조명합니다. 이후 헬싱키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오네가호수 암각화 일부를 살펴보며 북유라시아 바위그림 탐방을 마무리합니다.
이 책은 암각화 유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여행 과정도 함께 담았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좀처럼 찾지 않는 북방의 오지를 지나고, 바닷물에 잠겨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바위그림을 찾아 나섭니다. 때로는 석양에 물든 낯선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친절한 러시아 박물관 직원과의 만남을 통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바위그림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특징적입니다. 때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과 맞서는 인간의 입장이 되고, 때로는 물고기와 날짐승이 살아가는 세계 속 동물이 되어 오래전 사람들이 남긴 그림을 상상합니다. 그림에 담긴 의미를 하나로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선사 인류의 삶과 믿음에 접근합니다.
백야의 땅, 바위그림 시간여행은 오늘날의 기록과 문헌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선사 인류의 세계를 바위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들여다보게 합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자신의 해석을 따라가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림 속 수수께끼를 직접 풀어보기를 권합니다. 북방의 바위그림을 따라가는 여정은 오래전 인류가 무엇을 바라보고 기억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여행이기도 합니다.
저자 박성현은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미학을,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북방의 역사와 원주민 문화를 연구해 왔으며 관심 분야를 선사 암각화와 북극권 해양문화로 넓혔습니다. 유라시아 여러 지역의 암각화 유적을 직접 찾아다니며 오래전 사람들의 삶과 세계관을 살펴보고 현지인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주요 논문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바다 책으로 읽는 북극 해양사냥꾼(2022)', '펙티멜 암각화를 통해 본 고대 추콧카의 해양문화(2023)', '카렐리야 암각화의 특징과 신석기인의 세계 인식(2023)' 등이 있습니다.
박성현 작가의 신간 '백야의 땅, 바위그림 시간여행' 표지. (자료=경상국립대학교 출판부)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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